배남골 2011. 7. 30. 13:27

스웨덴

수도는 스톡홀름이다. 스웨덴은 남북 길이 약 1,600km, 동서길이 약 500km이며, 노르웨이(서쪽과 북서쪽), 핀란드(북동쪽), 보트니아 만(동쪽), 발트 해(남동쪽), 북해(남서쪽)와 경계를 이룬다. 남쪽 끝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하고 있다. 면적 450,295, 인구 9,290,000(2009 추계).

 

덴마크를 떠나 노르웨이를 거쳐 스웨덴으로 향한다

 

지나는동안 저녁햇살을 받아 동쪽의 구름은 이렇게 화려하다

 

 

하루를 묵었던 존코핑의 QUALITY HOTEL

 

스톡홀롬 시내 관광을 시작한다

 

 

스톡홀롬 시청사

스톡홀롬 시청사는 쿵스홀멘섬 남쭉에 위치해 있는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한다.

1923년 라그나르 오스트베리의 설계로 만들어 졌으며, 800만개의 벽돌과 1,900만 개의 금 도금 모자이크로 완성되어 졌으며, 내부의 '푸른방'은 해마다 12월에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후의 만찬회가 열린다.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시청사

 

 

 

스웨덴의 스톡홀롬은 큰도시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깨끗하고 2만5천여개의 호수

로 둘러싸여 있어 버스 대신 페리 이용을 많이한다

 

왼쪽의 진환 계수씨는 전날 중이염 재발로인해 덴마크관광을 포기하고 하루를 호텔에서 쉬고 스웨덴 관광에 합류했다

 

 

 

 

우리의 인솔자 Miss최와

 

 

 

 

 

 

 

 

 

 

 

 

스웨덴의 왕궁

스웨덴의 왕궁은 원래 바사왕이 1532년 스톡홀롬으로 수도를 옮긴 후 지은 궁전인데 1697년 화재로 거의 전소 되었던것을 1754년 크리스티아 여왕이 지금의 모습으로 재 건립하여 1982년까지 역대 왕실의 거처로 쓰였던 왕궁이다.

현재 건물에는 국왕의 집무실과 보물방, 무기방, 영빈방등 680개의 방이 있으며 왕실과 국빈을위한 공식 행사로만 사용을 하고있다

 

 

왕궁수비대 교대식이 진행되고있다

 

 

 

구 시가지 감라스탄

중세 스톡홀름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스타드스홀멘, 헬게안드스홀멘, 리다르홀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16~17세기에 건립되었으며, 법적으로 개조가 금지되어 있다. 스타드스홀멘에는 왕궁을 비롯하여 산크트니콜라스 성당으로도 불리는 스토르퀴르칸, 독일 교회, 상원의사당, 정부청사, 증권거래소 및 유명한 건물들이 많다. 리다르홀멘은 리다르홀름 교회가 소유하고 있다. 국회의사당과 중앙은행은 헬게안드스홀멘에 있다.

거리의 초상화가

 

 

시가지에서 가장 좁은골목 한번씩 다녀 오란다

 

200년이상 전통을 자랑하는 찻집

 

곳곳에 건물들이 지반이 약해 피사의 사탑처럼 점차 이렇게 기울고 있다

 

 

 

현지 안내원

 

우물터

 

 

 

 

 

거리악사 음악 들으며 햇빛 쐬가며 먹어가며....

 

오벨리스크(Obelisk)탑

왕궁앞 광장 중앙에는 구스타브3세의 탑이라는 오벨리스크(Obelisk)탑이 서있다

구스타브3세는 러시아와의 스벤스쿠스드 해전에서 승리하는등 구스타브시대로 불리는 스웨덴의 전성기를 이끌어왔던 국왕이었다

이 조형물은 국왕이 전쟁중 왕궁을 잘 지켜준 스톡홀로믜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세운 것이라 함

 

 

바사박물관

구스타프 2세 시대인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10일 처녀항해때 스톡홀름항에서 침몰한 스웨덴 왕실의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이이다.
침몰된이후 1956년에 해양 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Anders Franzen)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발견후 333년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다.1962년 임시 박물관이 문을 열어 이곳에서 1979년까지 보호액을 뿌리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1988년 바사호는 반정도 완성된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90년 바사 박물관이 개관되었다. 건조 당시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화 전함으로 침몰한 이유는 애초에 계획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포를 이 배에 싣고자 한것이 원인이었다. 당시의 건조기술로는 경험이 없었던 큰 선박을 건조해야 했고 이에 있어서 바사는 상부하중이 너무 커 균형을 유지 하지 못하고 돌풍에 침몰하고 만것이다.

총길이 69m, 최대폭 약 11.7m, 높이 52.2m, 배수량 약 1,210t, 적재 대포 64문, 탑승 가능인원은 450명(300명의 군인)이다. 바사호의 인양과 함께 당시의 목조품과 배안의 조각상등과 더불어, 당시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들이 함께 발견되어 17세기의 사회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박물관은 총 7층으로 구성되어져 있어, 바사호를 여러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다

박물관앞의 삿대조형물

 

박물관 입구

 

복원된 바사호

 

 

 

 

 

 

바사호 전면의 조각

 

 

 

 

이 모든 조각품들이 바사호에 있었던 것들이다

 

 

 

 

유골로 복원한 흉상

 

 

 

FU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