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촌 천진암
天眞菴은, 古朝鮮 시대 祭政一致의 관습으로, 本來 檀君影幀 天眞을 모시고 山祭祀, 堂山祭, 山神祭 등을 올리던 天眞閣 혹은 天眞堂이라는 작은 草家 堂집이 오랜 세월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며, 훗날 天眞菴이 되어, 1779년을 전후하여 廢刹이 되었었으니, 丁若鏞 선생의 글에, \"天眞菴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다,,,요사체는 반이나 무너져 빈 터가 되었네(寺破無舊觀,樓前僚舍半虛舊)\" 하였고, 1797년 丁巳年 당시 洪敬謨의 南漢志에서는, \"天眞菴은 오래된 헌 절인데,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司饔院에서 관리하고 있다(天眞菴爲古寺造紙物今屬司饔院)\"고 함으로써, 사찰로서의 기능을 言及하지 않고 있으며, 聖 Daveluy 主敎는 1850년 경의 기록 문헌에서, 젊은 선비들과 함께 李檗聖祖께서 講學을 하던 곳은, 당시 잘 쓰이지 않는 한적한 居處(廢刹)이었다(L'edifice isole et perdu)고 하였다.
천진암 입구의 예수목각들
천진암 오르는 길
예전과 하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뒤에는 넓은 성당터와 지금의 성당이 보인다
박물관은 공사중
사진 전시관
주차장을 향하여 내려간다
황순원의 소나기마을
소재 : 경기동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산74번지
작가 황순원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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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별>, <목넘이 마을의 개>, <그늘>, <기러기>, <독 짓는 늙은이>, <소나기>, 장편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일월』 등이 있고, <황순원전집> 12권이 간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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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선생은 원래 고향은 이북이지만 생애 3분의2는 남한땅에 살며 많은 작품을 썼으며 한편으로는 23년 6개월동안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봉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들과 교수들을 길러 내었다.
선생이 2000년 9월 15일 타계하자 문인 제자들과 교수들이 선생의 문학을 온 국민이 체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적합한 공간을 찾아 발벗고 나서게 되었다.
소나기의 한 장면
문학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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